삶묵상2018. 1. 31. 10:14

사도행전1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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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옥에서 사라진 일로 경비병들이 죽고 혼란에 빠진 헤롯 아그립바는 예루살렘 북서쪽 104km 떨어진 가이사랴(그 당시 로마의 총독관저가 있었던 곳이며 백부장 고넬료가 있었던 곳)로 떠났다.

헤롯은 곡물 수출을 끊겠다는 위협을 당해 화해하러온 두로와 시돈 사람들 앞의 아첨을 듣고 그 영광을 자신이 받고 죽었다.

하나님 말씀은 더 널리 퍼져갔다.

M

헤롯이 예루살렘을 떠난 것은 그의 박해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중단하고 가이사랴로 옮긴 것은 베드로의 일로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는 죽고 말씀은 더 퍼져가게 되었다.

왕좌에 앉아 빛나는 옷을 입은 헤롯은 사람들의 아첨에 만족해하며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제자들이 원주민들이 신이라고 추앙할 때 옷을 찢으며 만류한 것과 대조적이다.

P

주님, 헤롯이 왕의 지위를 이용해서 교회를 핍박하였지만, 주님은 복음이 더 왕성하게 퍼져나가게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싶지만, 많은 사람이 저를 힘들게 하고 훼방하곤 합니다. 낙심하여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온 우주의 왕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해주소서.

저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을 때가 잦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신 것은 주님이신데, 그 영광을 가로챈 교만을 용서하시고 오직 아버지의 이름만 높이게 해주소서. 아멘!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1. 30. 09:55

사도행전121-17


W.

헤롯 왕가는 3대에 걸쳐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였다. 헤롯 아그립바왕은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더 박해를 가했는데,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유대인과 뜻이 맞아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AD 42년경 사도 중에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의 겟세마네기도를 목격할 만큼 사도 중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베드로는 잡혀 옥에 갇혔고, 이 한 사람을 지키려고 4명이 돌아가면서 경계를 섰다.

그러나 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하나님의 기적은 이런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 버렸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베드로는 유유히 걸어나와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던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사람들은 역시 베드로의 탈출을 믿지 않았다.


M.

베드로에 옥에서 풀려난 사건은 많은 성도에게 알려졌고, 헤롯왕(예수님 탄생하실 때 어린아이를 죽인 왕의 손자)과 유대인들이 가해오는 조직적인 핍박에 대해 복음의 능력이 훨씬 더 위대하다는 확신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P.

주님, 지금 세상은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반대하고 복음이 더는 퍼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마치 사도의 수장인 베드로가 옥에 갇혀 쇠사슬에 묶인 채 꼼짝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불편해하지도 않고 잘 지내는 저의 모습이 더 심각한 문제임을 고백합니다.

왕과 유대인이 제자들을 핍박했듯이 나라와 국민은 조직적으로 복음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있어서 주님의 교회는 날이 갈수록 초라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지는 역사는 제가 그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수많은 성도의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고백하고 철저히 그 발 앞에 엎드려 회개하며 도우심을 구합니다. 저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주님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1. 29. 08:54

사도행전 9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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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다의 애니아: 중풍 8, 누워지냄. 베드로가 일어나라 하니 일어났다.

애니아(이름은 여자같으나, 남자임)라는 이름은 칭찬받는자라는 뜻인데, 그곳 성도들은 그를 돕기 원해서 베드로를 데리고 갔던 같다.

8 동안 누워 있었다면 아무리 신경이 정상으로 회복된다 해도 위축된 근육으로 즉시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일어나 자리를 정돈한 것으로 봐서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서는 있을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를 목격하고 들어 알게 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을 것이다.

 

욥바의 다비다(도르가: 사슴이라는 ) 여제자, 병들어 죽어 눕혀 있었다.

욥바는 룻다로부터 서편으로 14.5km 떨어진 도시로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사람을 시켜 속히 와달라고 부탁했고, 베드로를 그녀가 누워있는 다락방으로 인도했다.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준 옷가지를 보여줬다.

내보내고, 베드로가 기도했고, 일어나라고 선포하였다.

다비다는 살아났고,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다.

 

M

룻다의 애니아의 병을 고치고, 욥바의 다비다를 살리고 나서 나타난 결과는 공통으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것이었다. 병과 죽음이라는 문제가 해결된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영혼 구원이다. 베드로의 고치는 사역은 결국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었다.

 

P

주님,

해결 불가능한 8년된 중풍이 순간에 나아 온몸이 회복되는 기적을 사람들은 모두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무슨 속임수가 있다며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며 관심조차 갖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강퍅해진 사람들의 마음도 문제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기독교는 심각합니다. 주님께서 도저히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끝없는 추락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저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병든 자를 낫게 하는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어떤 일을 하든 일의 결과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저의 삶의 모든 영역이 복음으로 물들어 오직 예수님만 증거되고 많은 사람이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당장 닥친 시급한 문제는 복음을 널리 전하려고 펼쳐두신 주님의 계획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담대하게 구하게 하시고 사람을 살리는 사랑으로 행하게 하소서.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1. 29. 08:06

사도행전 11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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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 사역을 하고 돌아온 베드로는 교회의 비난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와 성령께서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역사 하셨음을 설명하였고, 신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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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는 길은 도보로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였다. 발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힘들게 다녀오는 그의 모습은 그곳에서의 놀라운 사역을 통해 성령이 충만해있었을 텐데, 그를 맞이한 교회 성도들의 반응을 싸늘하기만 했다.

그들이 비판하는 주된 내용은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교제하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들의 갇힌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여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억지였다. 아마도 자신들이 가장 예수님을 잘 믿기 때문에 자신들과 다르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려는 태도에서 생긴 비난이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설명을 다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방인을 향해서도 복음의 문이 열렸음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그들은 사도행전 18절에 권능을 받아 온 유대와 사마리아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한 주님의 말씀을 모두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보았다면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베드로를 비난하는 모습은 마치 미련한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내는 열심이 도리어 성령의 역사를 막아서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우매함을 다 덮을 수는 없다. 깨어 기도하고 지금 이 순간도 살아 역사 하셔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사역을 인정해 드리자.


P

오늘 귀한 날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잘못된 열심이 도리어 주님의 복음 사역을 훼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회개합니다. 형제의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었는데, 제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고 섣부른 판단과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해 드리고 다만 주님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게 하소서.

아멘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1. 22. 08:58

사도행전9장10-1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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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성도들의 핍박자 사울을 위해 가서 기도해주라는 주님의 부탁을 받았다. 사울의 소문을 익히 알았던 아나니아는 머뭇거렸으나, 순종하여 가서 기도하였고 사울은 다시 보게 되었다. 


M

왜 사울이 눈이 멀게 하는 것은 주님이 하시고, 다시 보게 하는 것은 제자 아나니아를 시키셨을까?

사울은 주님이 부르신 큰 복음의 사역자 였다. 사울의 사역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교회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고, 가장 먼저 그가 핍박하던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이 중요했다. 


아나니아의 순종은 목숨을 건 대단한 일이었다.

아나니아가 알고 있는 사울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인물이었고, 주님의 부탁을 듣고서 여러 말로 가기가 어렵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순종하여 찾아갔고 사울을 '형제'라고 부르며 다시 보게 해주었다. 정말 가기 싫었을 텐데, 주님이 그려주신 큰 그림을 보고 순종하여 나아간 결과 사울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P

사랑의 주님, 제 주변에는 상종하기도 싫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도 사랑하신다 하셨는데,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살리시려는 한 영혼이 눈이 멀어 사흘을 식음을 전폐하고 마음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다가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억지로 외면하려는 저의 불순종을 용서하소서. 

사울은 나를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길을 가다가 앞을 못보는 소경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자업자득이라며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고, 심지어는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위대한 전도자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가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주님이 베푸신 배려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는 늘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길 원하면서도 그가 당한 고난은 애써 외면하곤 하였습니다. 차라리 겸손하게 아나니아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어 형제를 높여주며 그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든든하게 세움을 입도록 돕는 자가 되게 하시고,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는 Peacemaker가 되게 해주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싫어도 기꺼이 순종하여 사람을 세운 아나니아를 본받게 하소서. 아멘.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1. 19. 09:02

사도행전8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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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의 사마리아행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소식은 예루살렘의 두 지도자를 사마리아로 파견하게 하였다.

마술사 시몬은 세례를 받고 전심으로(13)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의 사역을 지켜보았는데, 그의 관심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행하는 능력에 있었다. 두 사도가 기도하여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돈으로 그런 능력을 사려고 하였다가 그 악한 생각을 회개하라는 권면을 받게 된다.


M

버려지고 소외된 땅 사마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은 빌립 한 사람의 결단으로부터 시작되어 온 성이 기뻐하고 성령 세례를 받는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인을 멸시 천대하였고, 가장 시급한 선교지였다. 지도자들이었던 사도들이 못한 일을 빌립 집사가 감당한 것은 복음에 대한 열정과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는 시몬은 오늘날의 교회와 비슷한 점이 있다. 교회는 경영되고 있으며 행사는 기도가 아니라 돈으로 치러진다. 규모있는 운영을 위해 재정부가 있고, 예산을 세우고 집행을 한다. 모양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데 내용은 기독교 기업이다. 그러다 보니 일만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함이 교회에 많아져 말하기도 부끄러운 많은 비리가 연일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개독교가 되어가고 있다. 시몬에게 내린 사도들의 처방은 1) 죄에 빠져 있음을 각성하라 2) 회개하라 였다.

시몬의 가장 큰 문제는 돈으로 그런 능력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사람들에게 베푼 능력으로 인정을 받아왔고 자신의 방법이 통했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버리지 못한 게 문제였다. 세례(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물속에 들어가 한번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죽었으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내 방식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P

주님, 우리 교회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교회가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라 사업장이나 기업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이 바로 돈으로 주님의 능력을 살 수 있으리라는 저의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과 쌓아온 경험을 십자가에 못박을 용기를 주소서. 나는 죽고 내 안에 오직 주님만 살아계시오니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만을 드러내는 생활 신앙을 갖게 하소서. 오늘도 소외당하는 이웃을 위한 기쁜 소식을 나눌 결단을 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말씀을 들어야 하는 한 영혼을 찾게 하소서. 아멘.

Posted by 소겸
카테고리 없음2018. 1. 18. 10:47

사도행전8장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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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순교는 제자들의 디아스포라로 연결되었다. 사방에 흩어진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말씀을 증거했다. 

그중 빌립집사는 소외된 땅 사마리아를 택했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침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 성은 기쁨이 넘쳤다. 

마술사 시몬은 큰 능력으로 사람들의 관삼을 받았는데, 빌립의 사역을 보고 자신도 세례를 받고 따르게 되었다. 


M

스데반의 죽음 이후 더 큰 박해가 일어났지만, 이 때문에 도리어 복음이 더 널리 퍼지게 되었으니 하나님은 분명 우리보다 한 수 위이시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는 것은 우리가 북한을 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환영받지 못할 땅에 가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복음을 전하여 그 성에 기쁨이 넘치게 했다니, 그의 사역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세계 선교사의 90% 이상이 대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통계는 우리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버려져 관심을 벗어난 사마리아 사람을 찾아보자. 주님은 동일하게 그들도 사랑하시며 내가 남들이 꺼리는 그곳에 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시몬은 세례까지 받으며 빌립을 따랐지만, 그의 의도는 불순한 것이었다. 말씀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복음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빌립의 능력이 부러웠을 뿐이다. 나에게는 아무 능력 없어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니, 사람들 앞에 서서 큰 능력을 갖췄다고 뽐낼 것이 아니라 골방을 찾아 들어가 묵묵히 주님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일 위에 사랑을 더해야한다. 보이려고 일하지 말고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 드리는 일로 하늘의 상급을 쌓아가야 한다. 


P

전능하신 주님, 지금 겪는 이 크나큰 어려움이 알고 보니 주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소외된 이웃 사마리아를 사랑으로 섬길 용기와 결단을 허락하여 주소서. 그들의 영혼은 신음하며 주의 구원을 바라고 있으니, 저를 그곳에 서 있게 하소서. 

저를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게 하시고, 모든 역사를 골방에서 이루게 하소서. 주님이 일하시면 저는 다만 순종할 뿐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