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울과 실라가 깊은 옥에 갖혀 절망스런 환경 속에서 한 일은 죄수들이 들을 만큼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한 것이었다. 간수는 죄수가 도망갔다고 생각하여 자결을 결심하였는데, 주의 제자들은 그 상황에서 주님을 찬양했으니, 극명한 차이가 있다.
간수가 자결하려다가 바울과 실라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 그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죄수가 도망을 가면 간수는 죄수가 받은 형량만큼 벌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그 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아는 간수는 그 벌을 받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자결을 선택한 것이었다.
2) 간수가 무서워 떨며 엎드리어 한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였다. 점을 쳐서 주인을 이롭게 하던 여종이 두 제자를 알아보고 한 말은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salvation)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였다. 간수는 그들이 어떤 일을 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을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 선포에 순종하여 자주장사 루디아와 그의 온 집에 구원받은 것처럼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 다음 날 상관들은 제자들을 풀어주려 했는데,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추측하기는 1) 벌이 충분했다고 생각 2)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린 사실에 대한 두려움 3) 모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등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 시점에서 그냥 순순히 물러가지 않고 자신이 로마인 임을 내세워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배짱을 부렸다.
1] 우리에게 주어지는 절박한 상황은 무엇인가? 때로는 죽을 것 같은 위협과 큰 어려움에 부닥칠 수도 있다. 우리의 선택은 자포자기가 될 수도 있지만, 감사와 찬송이 될 수도 있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로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2] 구원의 복음은 어떻게든 전해지게 되어있다. 간수도 그날 붙잡혀온 두 제자를 그저 흉악한 죄인으로만 여겼겠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심겨있었다.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음을 잊지 말자.
3] 겸손한 것과 겁이 많은 것은 다르다. 온유함 가운데 강함이 드러남을 잊지 말자. 복음의 일꾼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세를 기억하자.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험한 싸움에서 이긴 승리자이다.
주님께 드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머리카락을 세듯이 잘 헤아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저에게 주어지는 혹독한 고난을 잘 이겨내게 하시고, 그런 중에 기도와 찬양을 그치지 말게 하소서. 주님의 구원은 지금도 온전히 이루어져 감을 믿습니다.
세상에 대해 더욱 담대하게 하시고 복음의 배짱을 누리며 어떻게 하든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에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사도행전 16장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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