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묵상2018. 1. 29. 08:54

사도행전 932-43

W

룻다의 애니아: 중풍 8, 누워지냄. 베드로가 일어나라 하니 일어났다.

애니아(이름은 여자같으나, 남자임)라는 이름은 칭찬받는자라는 뜻인데, 그곳 성도들은 그를 돕기 원해서 베드로를 데리고 갔던 같다.

8 동안 누워 있었다면 아무리 신경이 정상으로 회복된다 해도 위축된 근육으로 즉시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일어나 자리를 정돈한 것으로 봐서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서는 있을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를 목격하고 들어 알게 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을 것이다.

 

욥바의 다비다(도르가: 사슴이라는 ) 여제자, 병들어 죽어 눕혀 있었다.

욥바는 룻다로부터 서편으로 14.5km 떨어진 도시로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사람을 시켜 속히 와달라고 부탁했고, 베드로를 그녀가 누워있는 다락방으로 인도했다.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준 옷가지를 보여줬다.

내보내고, 베드로가 기도했고, 일어나라고 선포하였다.

다비다는 살아났고,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다.

 

M

룻다의 애니아의 병을 고치고, 욥바의 다비다를 살리고 나서 나타난 결과는 공통으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것이었다. 병과 죽음이라는 문제가 해결된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영혼 구원이다. 베드로의 고치는 사역은 결국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는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었다.

 

P

주님,

해결 불가능한 8년된 중풍이 순간에 나아 온몸이 회복되는 기적을 사람들은 모두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무슨 속임수가 있다며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며 관심조차 갖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강퍅해진 사람들의 마음도 문제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기독교는 심각합니다. 주님께서 도저히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끝없는 추락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저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병든 자를 낫게 하는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어떤 일을 하든 일의 결과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저의 삶의 모든 영역이 복음으로 물들어 오직 예수님만 증거되고 많은 사람이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당장 닥친 시급한 문제는 복음을 널리 전하려고 펼쳐두신 주님의 계획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담대하게 구하게 하시고 사람을 살리는 사랑으로 행하게 하소서.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1. 29. 08:06

사도행전 11 1-18


W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 사역을 하고 돌아온 베드로는 교회의 비난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와 성령께서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역사 하셨음을 설명하였고, 신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M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는 길은 도보로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였다. 발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힘들게 다녀오는 그의 모습은 그곳에서의 놀라운 사역을 통해 성령이 충만해있었을 텐데, 그를 맞이한 교회 성도들의 반응을 싸늘하기만 했다.

그들이 비판하는 주된 내용은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교제하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들의 갇힌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여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억지였다. 아마도 자신들이 가장 예수님을 잘 믿기 때문에 자신들과 다르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려는 태도에서 생긴 비난이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설명을 다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방인을 향해서도 복음의 문이 열렸음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그들은 사도행전 18절에 권능을 받아 온 유대와 사마리아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한 주님의 말씀을 모두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보았다면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베드로를 비난하는 모습은 마치 미련한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내는 열심이 도리어 성령의 역사를 막아서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우리의 우매함을 다 덮을 수는 없다. 깨어 기도하고 지금 이 순간도 살아 역사 하셔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사역을 인정해 드리자.


P

오늘 귀한 날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잘못된 열심이 도리어 주님의 복음 사역을 훼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회개합니다. 형제의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었는데, 제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고 섣부른 판단과 비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해 드리고 다만 주님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게 하소서.

아멘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1. 22. 08:58

사도행전9장10-19a


W

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성도들의 핍박자 사울을 위해 가서 기도해주라는 주님의 부탁을 받았다. 사울의 소문을 익히 알았던 아나니아는 머뭇거렸으나, 순종하여 가서 기도하였고 사울은 다시 보게 되었다. 


M

왜 사울이 눈이 멀게 하는 것은 주님이 하시고, 다시 보게 하는 것은 제자 아나니아를 시키셨을까?

사울은 주님이 부르신 큰 복음의 사역자 였다. 사울의 사역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교회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었고, 가장 먼저 그가 핍박하던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이 중요했다. 


아나니아의 순종은 목숨을 건 대단한 일이었다.

아나니아가 알고 있는 사울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인물이었고, 주님의 부탁을 듣고서 여러 말로 가기가 어렵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순종하여 찾아갔고 사울을 '형제'라고 부르며 다시 보게 해주었다. 정말 가기 싫었을 텐데, 주님이 그려주신 큰 그림을 보고 순종하여 나아간 결과 사울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다. 


P

사랑의 주님, 제 주변에는 상종하기도 싫고 말을 섞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도 사랑하신다 하셨는데,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살리시려는 한 영혼이 눈이 멀어 사흘을 식음을 전폐하고 마음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다가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억지로 외면하려는 저의 불순종을 용서하소서. 

사울은 나를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길을 가다가 앞을 못보는 소경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자업자득이라며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고, 심지어는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위대한 전도자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가 우리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주님이 베푸신 배려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는 늘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람이 되길 원하면서도 그가 당한 고난은 애써 외면하곤 하였습니다. 차라리 겸손하게 아나니아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어 형제를 높여주며 그가 하나님의 일군으로 든든하게 세움을 입도록 돕는 자가 되게 하시고,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는 Peacemaker가 되게 해주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싫어도 기꺼이 순종하여 사람을 세운 아나니아를 본받게 하소서. 아멘. 

Posted by 소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