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묵상2018. 2. 28. 11:53

이 흥미로운 기도는 미국 캔자스에서 있었던 상원 개회식에서 드려졌습니다. 이 기도가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 라이트 목사님이 캔자스 상원 회의의 개회 기도를 부탁받았을 때 일상적인 내용을 기대하였겠지만, 그의 기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주님의 용서와 인도하심을 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악한 것을 선하다고 말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균형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가치관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이 절대적 진리라 하는 것을 비웃으면서 그것을 다원주의라 부릅니다.

우리는 다른 여러 신을 섬기면서 다문화주의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진리를 왜곡하는 것을 찬성하면서 그것을 다른 생활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것을 복권 당첨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게으름을 보상하면서 복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태중의 아기를 죽이면서 부모의 선택이라고 하며, 낙태를 정당하고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내버려 두고 제대로 훈육하지 않으면서 자존심을 세워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권력을 남용하면서 그것을 정치라고 합니다.

우리는 공금을 횡령하고서 필수적인 비용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공식적인 뇌물을 받으면서 공직의 달콤함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웃의 재물을 탐내고 야망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속된 말과 외설물로 세상을 오염시키고 표현의 자유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조상의 유서 깊은 가치를 조롱하고 계몽이라 불렀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 마음을 살펴주소서.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게 해주시고 죄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아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의원이 항의의 표시로 기도 중에 퇴장했습니다. 6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라이트가 목사 시무하고 있는 센트럴 크리스천 처지는 47명의 부정적인 반응을 제외하고 5000명이 넘는 지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교회는 인도, 아프리카, 그리고 한국으로부터 이 기도의 전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의 도움으로 이 기도가 온 나라에 퍼지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의 한 나라"라고 불리기를 소망해봅니다.

이 기도문을 여러분의 친구들과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30일 이내에 온 세상이 듣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기도를 보지 않았을까요? 담대하게 전해보시기 바랍니다.

 

 

This interesting prayer was given in Kansas, USA, at the opening session of their Senate. It seems prayer still upsets some people. When Minister Joe Wright was asked to open the new session of the Kansas Senate, everyone was expecting the usual generalities, but this is what they heard: "Heavenly Father, we come before you today to ask your forgiveness and to seek your direction and guidance. We know Your Word says: "Woe to those who call evil good", but that is exactly what we have done. * We have lost our spiritual equilibrium and reversed our values. * We have ridiculed the absolute truth of Your Word and called it Pluralism. * We have worshipped other gods and called it multiculturalism. * We have endorsed perversion and called it alternative lifestyle. * We have exploited the poor and called it the lottery. * We have rewarded laziness and called it welfare. * We have killed our unborn and called it choice. * We have shot abortionists and called it justifiable. * We have neglected to discipline our children and called it building self-esteem. * We have abused power and called it politics. * We have embezzled public funds and called it essential expenses. * We have insitutionalised bribery and called it sweets of office. * We have coveted our neighbor's possessions and called it ambition. *We have polluted the air with profanity and pornography and called it freedom of expression. * We have ridiculed the time-honored values of our forefathers and called it enlightenment. Search us, Oh GOD, and know our hearts today; cleanse us from every sin and set us free. Amen!" The response was immediate. A number of legislators walked out during the prayer in protest. In 6 short weeks, Central Christian Church, where Rev. Wright is pastor, logged more than 5,000 phone calls with only 47 of those calls responding negatively. The church is now receiving international requests for copies of this prayer from India, Africa and Korea. With the LORD'S help, may this prayer sweep over our nation and WHOLEHEARTEDLY become our desire so that we again can be called "ONE NATION UNDER GOD." Think about this: If you forward this prayer to everyone on your list, in less than 30 days it would be heard by the world. How many people on your list will not receive this prayer. Do you have the boldness to pass it on? I HAVE, AND I HAVE JUST SHOWN IT BY FORWARDING THIS TO YOU.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28. 09:53

주님! 바울이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는 고백이 너무 부럽습니다. 이런 올바른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불명예를 치욕스러워하던 유대인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향해 회칠한 담이라 하며 율법을 지키라 하는 사람이 왜 율법을 안 지키냐고 올곧은 소리를 외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은 병들어 가고 있고 곳곳에는 온통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방관하지 말게 하시고 이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적절한 말을 생각나게 하시어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하게 하소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복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니 비판하고 정죄하기에 앞서서 먼저 사랑하게 하시고 긍휼히 여길 맘을 허락하소서. 마지막 때에 용기있게 외치는 소리가 되게 하소서. 아멘.

 

사도행전 2230-2311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26. 10:48

주님! 바울은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갔고 거기서 군중들에게 붙잡혀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천부장에 의해 위기를 모면하자마자 첫 번째 한 행동은 군중들에게 말하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런 복음에 대한 열정이 너무 부럽습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두들겨 맞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들의 구원을 위해 설교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용납하고 그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너무나 잘난 저 자신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답게 먼저 자아를 죽이게 하시고 사람들 앞에서 기꺼이 주님을 시인할 용기를 갖게 하소서. 저를 미워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고 사랑할 용기를 갖게 하소서. 아멘.


사도행전 21장37-22장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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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19. 09:01

W

1) 아데미(아르테미스: 주피터의 딸이며 아폴로와 쌍둥이) 여신은 에베소 사람의 자랑거리였으며 이로 인해 파생된 관광산업으로 많은 사람이 경제적 유익을 얻고 있었는데, 바울의 선교이후 우상숭배라 여겨져 생업에 위협을 느끼자 아데미 우상을 만들던 은세공인 데메드리오를 중심으로 에베소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2) 바울은 극장에 들어가려했으나, 제자들과 몇 관리들이 말려서 가지 못했다.

3)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를 내보내어 그리스도인들과는 다른 집단이라는 것을 변명하려하였으나, 실패하고 소요는 더 거세졌다.

4) 서기장은 사람들이 신전지기라며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바울과 그 제자들이 물건을 훔치지도 여신을 비방하지도 않았으니, 절차를 밟아서 고소하라면서 불법집회를 철회시켰다.

M

1) 데메드리오: 그도 복음을 들었을 것이나 그의 관심은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소식이 아니라 당장 얻게된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아까워하여서 사람들을 선동해 대규모 소요를 일으켰다. 우리 주위에도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많은 사람이 있다.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 가기가 더 어렵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내 가진 모든 것을 잃더라도 생명에 이르는 복음과는 바꿀 수 없음을 온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알렉산더: 유대인들은 그를 내보냄으로 자신들이 이 소요의 공격대상이 아님을 주장하려하였다. 이것은 비겁한 행동이다.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우상숭배를 금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마치 자신들은 아데미 여신을 옹호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하려 했으니 이 얼마나 나약한 모습인가?

3)바울: 사람들이 제자 두사람을 붙잡아 몰려간 그 극장에 갔다면 군중심리 속에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에 바울은 기꺼이 그 길을 택했다. 리더로서 책임있는 행동을 하려했던 바울의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동역자들의 의견 또한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이 소요는 바울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서기관의 현명한 중재로 잘 해결되었다.

P

주님, 세상은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모두가 부자가 되라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은 하나님을 이야기하지 않고 돈과 땅 이야기를 합니다. 기독교는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하나의 액세서리같이 취급되고 피값을 주시고 우리를 살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느새 우리 삶 속에서 종적을 감춰가고 있습니다. 유대인 알렉산더같이 복음의 진리를 거스르는 변명만 우리 입에 가득합니다. 바울처럼 모든 것을 잃더라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더라도 기꺼이 그 현장에 달려갈 용기를 주소서.

 

사도행전 19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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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17. 13:00

W

아볼로는 유대인이었으며 성경에 능통하고 언변이 좋았으며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는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잘 알았지만,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아볼로가 마음을 열고 낯선 부부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은 높이 살만하다. 안다고 생각할수록 남의 말을 듣기가 어려운데, 아볼로는 기꺼이 배움의 권함을 받아들이고 더 훌륭한 제자로 세워졌다.

바울은 에베소에 와서 사람들에게 성령 세례를 받도록 돕는다. 아마도 그곳의 성도들은 아볼로가 가르쳤던 제자들이었을 것이다. 약간 부족했던 아볼로의 사역에 바울의 사역이 더해져 온전케 되었다.

M

복음 사역은 결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고통으로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을 때 주님께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 바울 같은 동역자를 붙여주실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도우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붙여주신 동역자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먼저 주의 도우심을 구하고 다음은 귀한 동역자들을 구해야 할 것이다.

P

주님, 아볼로처럼 겸손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주님이 맡겨주신 사역을 귀한 동역자들과 함께 이뤄나가게 하소서.

성령님께서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일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시고 험한 세상에 대하여 강력한 증거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합니다.

 

사도행전 1824-197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14. 15:04

W

그리스 아테네에서 바울은 수많은 우상을 숭배하고 지적 호기심에 가득한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격동하였다. 아테네는 그리스 철학의 본산이었고 수많은 신전과 사원들이 있었다. 이 도시는 펠로폰네수스 전쟁(B.C.431-404)을 통해 빛을 읽었고, 바울이 방문했을 때에는 찬란한 영광이 사그라든 뒤였다. 하지만 그 도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화가 난 바울은 그들과 토론하였다. 지극히 이성적이었던 사람들의 성향에 딱 맞는 선교전략이 필요했다. 결국, 시의회에 불려가게 되었고 거기서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한다. 이로 인해 몇 사람이 회심하게 되었다.

M

지금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우상이 있고 확고한 신념을 지닌 많은 철학자가 있다. 이들을 향해 마음이 요동치는가? 이런 불일듯하는 동기 유발이 없다면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다. 주님이 가지신 뭇 영혼을 향한 그 애달픔이 우리 마음에 심어진다면 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P

도저히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 바울의 변론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가장 적합한 복음 증거의 방법이 생각나게 지혜를 더해주소서.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간절함이 제 마음에도 솟아나게 하소서. 아멘.

 

사도행전17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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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12. 10:31

1) 바울과 실라가 깊은 옥에 갖혀 절망스런 환경 속에서 한 일은 죄수들이 들을 만큼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한 것이었다. 간수는 죄수가 도망갔다고 생각하여 자결을 결심하였는데, 주의 제자들은 그 상황에서 주님을 찬양했으니, 극명한 차이가 있다.

간수가 자결하려다가 바울과 실라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 그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죄수가 도망을 가면 간수는 죄수가 받은 형량만큼 벌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그 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아는 간수는 그 벌을 받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자결을 선택한 것이었다.

2) 간수가 무서워 떨며 엎드리어 한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였다. 점을 쳐서 주인을 이롭게 하던 여종이 두 제자를 알아보고 한 말은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salvation)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였다. 간수는 그들이 어떤 일을 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을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 선포에 순종하여 자주장사 루디아와 그의 온 집에 구원받은 것처럼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 다음 날 상관들은 제자들을 풀어주려 했는데,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추측하기는 1) 벌이 충분했다고 생각 2)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린 사실에 대한 두려움 3) 모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등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 시점에서 그냥 순순히 물러가지 않고 자신이 로마인 임을 내세워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배짱을 부렸다.

 

1] 우리에게 주어지는 절박한 상황은 무엇인가? 때로는 죽을 것 같은 위협과 큰 어려움에 부닥칠 수도 있다. 우리의 선택은 자포자기가 될 수도 있지만, 감사와 찬송이 될 수도 있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로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2] 구원의 복음은 어떻게든 전해지게 되어있다. 간수도 그날 붙잡혀온 두 제자를 그저 흉악한 죄인으로만 여겼겠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심겨있었다.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음을 잊지 말자.

3] 겸손한 것과 겁이 많은 것은 다르다. 온유함 가운데 강함이 드러남을 잊지 말자. 복음의 일꾼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세를 기억하자.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험한 싸움에서 이긴 승리자이다.

 

주님께 드리는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머리카락을 세듯이 잘 헤아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저에게 주어지는 혹독한 고난을 잘 이겨내게 하시고, 그런 중에 기도와 찬양을 그치지 말게 하소서. 주님의 구원은 지금도 온전히 이루어져 감을 믿습니다.

세상에 대해 더욱 담대하게 하시고 복음의 배짱을 누리며 어떻게 하든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에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사도행전 1619-40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8. 10:26

W

-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로 생각된다. 사도 베드로의 말을 받아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유대인들과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 사이에서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했나를 알 수 있다. 

- 호2:23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 야고보는 구약 성경 곳곳에 나와 있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가능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근거로 이방인을 더 괴롭히지 말고 몇 개의 율례를 제시하면서 이방인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M

정통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던 종교적 우월감과 막 믿기 시작한 이방인들과는 많은 차이가 존재하였을 것이다. 이런 이방인들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 아니꼽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야고보는 이런 갈등의 상황을 유대인들의 기를 살려주면서 이방인에게도 약간 양보를 하라는 말로 중재를 멋지게 해내었다. 

P

주님, 초대교회의 갈등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균형감 있게 잘 대처한 야고보의 모습을 통해서 많이 부족한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양쪽의 말을 진심 어린 자세로 듣게 하시고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게 중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비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아멘. 


사도행전15장12-21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7. 08:35

W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으나 여태까지 율법을 알지도 못했고 지키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잘 차려진 상에 숟가락 하나 올린 격이니 배가 아플만도 하다. 유대인들이 할례도 받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폈기 때문에 이미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여겼던 이방인들에게는 커다란 혼란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 성도 몇이 예루살렘을 찾아가서 토론을 하였다.  베드로는 역시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이방인에게 전도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한 그는 율법이 없어도 예수님의 은혜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설명한다. 율법의 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이미 잘 아는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율법을 강요하고 이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다. 

안디옥, 베니게,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는 동안 바울 일행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형제들과 나누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더 견고하게 서가며 복음 증거에 열심을 올리게 되었을 것이다. 


M

우리도 잘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가?

율법의 의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율법적 행위를 강요하지는 않는가? 특히 교회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규칙을 만들고 이것을 지키는 것이 신앙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풍토는 재고해보아야 한다.

사역을 나누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 성도를 격려하는 데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조심할 것은 스스로를 높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때문이다.

이방인 선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왔는데, 이와 병행하여 생겨나는 신학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독선이 아니라 충분한 의논과 토론을 통해서였다.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때 지혜를 주시도록 간구하자


P

주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베푸신 한없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방인이었으나 이제는 접붙힌 바 되어 주님의 가지와 한몸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형제를 용납하게 하시고 나도 잘 못하는 것을 강요하는 미련한 짓을 관두게 하소서. 다만 하나님의 하신 일만을 선포하며 그분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생긴 갈등을 충분한 대화로 풀어가게 하시고 막힌 담을 허시는 주님의 중재를 소망합니다.아멘!

사도행전15장 1-11

Posted by 소겸
삶묵상2018. 2. 5. 09:17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의 선동은 두 사도의 목숨을 위협했고 그들은 루스드라로 떠나야만 했다. 

그곳에서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했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두 사도가 제우스와 헤르메스라 여기고 제사를 드리려 했다. 사도들은 옷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복음을 전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 유대인들의 악감: 모든 사람이 같은 편일 수가 없듯이, 누군가를 나(우리)를 반대하기 마련이다.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심한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견디기 어려운 위협을 주기도 한다. 나는 그저 내 할일을 했을 뿐인데, 그것을 악의적으로 해석하여 대적하는 무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사도들처럼 도망하여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 앉은뱅이의 구원: 사도들은 그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일어서라고 외쳤다. 병자는 많지만, 구원받을 만한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환자라도 고치실 능력이 있으시지만, 고쳐야할 사람을 고치신다. 하나님은 단순히 질병에서 해방되어 고통을 더는 것보다 더 훨씬 큰 목표가 있으신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다. 구원은 결국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그분께 우리의 생명을 맡김으로써 이루어지는 회복을 의미한다.

-- 신이라 칭송을 받았을 때: 헤롯왕은 자기가 한없이 높아져 벌레가 먹어 죽어버렸는데, 두 사도는 달랐다. 사람들이 안 믿을까봐 옷을 찢고 소리를 지르며,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외쳤다. 이런 행동을 통해 높아진 것은 하나님 한분 뿐이었으며, 이로 인해 구원의 복음은 더 확실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주님께 드리는 기도: 

사도들이 목숨의 위협이 무서워서 이고니온을 떠난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시대를 분별하게 하시고 있어야할 곳을 민감하게 깨달아 알 지혜를 주셔서 주님이 부르신 그곳에 서있게 하소서. 

저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주셔서 지금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주님의 손길로 알아 살려주시기를 구하게 하시고,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이 위기를 이겨내게 하소서. 

나의 나된 것은 오직 주의 은혜 때문이니 스스로를 높이지 말게 하시고, 나의 삶의 전 영역을 통해 주님의 높으신 이름만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사도행전 14장1-18

Posted by 소겸